전 세계적으로 태양광과 풍력 같은 재생에너지가 ‘가장 저렴한 전력원’으로 자리 잡고 있다.
국제에너지기구(IEA)와 국제재생에너지기구(IRENA)의 최근 보고서에 따르면 태양광과 육상풍력의 균등화발전단가(LCOE)는 MWh당 약 40달러 수준으로, 석탄·천연가스보다 훨씬 싸다.
그러나 한국은 정반대다. 산업통상자원부 자료에 따르면 지난 8월 기준 국내 태양광·육상풍력의 전력 정산단가는 1kWh당 130~140원, 해상풍력은 200원 이상으로 원전(80원), 석탄(100원)을 훌쩍 웃돈다.
즉, 세계적으로는 ‘가장 싼 에너지원’이지만 한국에서는 ‘가장 비싼 전기’가 되는 역전 현상이 벌어지고 있는 셈이다.
IRENA와 유엔 공동 보고서에 따르면 2024년 전 세계 신규 재생에너지 발전소의 91%가 신규 화석연료 발전소보다 더 저렴했다.
태양광 발전 단가는 1kWh당 0.043달러, 육상풍력은 0.034달러로 석탄보다 각각 41%, 53% 낮았다.
에너지경제연구원도 “태양광의 글로벌 평균 단가는 1MWh당 45달러, 육상풍력은 55달러, 해상풍력은 90달러 수준으로 지속 하락 중”이라고 밝혔다.
이 같은 단가 하락은 패널 효율 향상, 풍력터빈 대형화, 자동화 및 점검 기술 혁신, 설치 공정 단순화 등 기술 진보 덕분이다.
또한 누적 설치량 증가로 대규모 생산 체제가 가능해지면서 설비 가격이 떨어지고, 각국 정부의 정책 지원과 녹색금융 확대가 재생에너지 프로젝트의 자금 조달 비용을 낮추고 있다.
한국의 재생에너지 발전 단가가 높은 이유는 복합적이다.
첫째, 시장 구조의 문제다.
국내에서는 재생에너지 전력이 일반 시장에서 직접 거래되지 않고, SMP(계통한계가격)과 REC(재생에너지 공급인증서) 제도를 통해 거래된다. 이 구조에서 태양광·풍력 전력은 화력발전보다 높은 가격으로 책정되는 경우가 많다.
둘째, 자연 조건의 제약이다.
일조량과 풍속이 세계 평균보다 낮고, 송전망 연결 및 인프라 부족으로 추가 비용이 발생한다.
셋째, 기존 에너지 대비 높은 초기투자비다.
산업부 ‘단위 발전량 대비 투자비용 분석’에 따르면 1kWh 전기 생산에 원전은 500원이 드는 반면 태양광은 3422원, 풍력은 4059원으로 각각 6.8배, 8.1배에 달한다.
결국 재생에너지가 세계적으로 싸졌더라도 한국에서는 지리적, 제도적, 구조적 요인이 결합해 비싼 전력으로 남아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문가들은 재생에너지 확대를 멈출 수 없다고 입을 모은다.
탄소중립·기후위기 대응, 에너지 안보 강화, 산업 전환과 일자리 창출 등 미래 경쟁력을 위해 필수적인 전환이기 때문이다.
특히 파리협정 이후 온실가스 감축 이행은 선택이 아닌 의무이며, 이를 미룰 경우 탄소국경조정제도(CBAM) 등으로 인한 경제적 손실이 더 커질 수 있다.
국내 재생에너지 비중이 낮을수록 국제 연료 가격 급등에 취약해지고, 수입 의존도가 높아져 에너지 안보 위기가 커진다. 또한 글로벌 기업들이 ‘탈탄소 공급망’을 요구함에 따라, 재생에너지 확보는 산업 경쟁력의 핵심으로 떠올랐다.
전문가들은 국내 재생에너지 단가를 낮추기 위해선 규모의 경제 실현과 입찰제 확대, 송배전망 확충이 필요하다고 조언한다.
또한 공유수면, 군사·환경 규제 등 복잡한 인허가 절차를 단순화하고 부지 접근성을 개선하면 투자비를 크게 줄일 수 있다.
세금 감면과 저리 녹색금융을 확대할 경우 발전 단가를 최대 20~25%까지 낮출 수 있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김성환 기후에너지환경부 장관은 “재생에너지를 획기적으로 늘리고 석탄은 빠르게 줄이는 것이 중요하다”며, “원전은 안정적 기저전원으로, LNG는 비상전원으로 활용해 탈탄소 체계를 구축하되 전력요금 인상 부담은 최소화하겠다”고 밝혔다.
전 세계는 이미 ‘값싼 재생에너지 시대’로 들어섰다.
한국이 여전히 높은 단가의 벽을 넘지 못한다면, 탄소중립 경쟁에서도 뒤처질 수 있다.
기술 혁신과 제도 개편, 전력망 투자를 통해 재생에너지가 ‘비싼 선택’이 아닌 ‘현명한 투자’가 되는 길을 서둘러 찾아야 할 때다.
한방통신사 양호선기자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