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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전관예우의 뿌리, 지방 조달 시장까지 뻗다 "수도권 지자체 유착의 민낯과 감춰진 경제 손실"

전관예우의 그림자가 여전히 우리 사회 곳곳에 남아 있다는 사실이 최근 지방자치단체의 조달·입찰 시장에서도 다시 드러나고 있다.

 

경기도 일대를 중심으로 퇴직 공직자들이 자신이 몸담았던 기관의 인맥과 학연을 활용해 조달업체와 결탁하고, 참신한 중소기업들을 밀어내는 구조가 고착화되었다는 업계의 탄식이 이어지고 있다.

 

과거에는 법조계나 중앙 공공기관 중심으로 거론되던 전관예우가 이제는 지자체 단위의 행정시장까지 깊숙이 뿌리내리며 공정경쟁의 질서를 무너뜨리고 있는 셈이다.

 

한 중소 조달업체 대표는 “입찰 공고가 나도 이미 누가 가져갈지 정해져 있다는 말이 돌고, 새로 도전하려는 사람은 시작부터 포기하는 분위기”라고 토로했다.

 

또 다른 업계 관계자는 “보건소나 교육청 같은 작은 발주처에서도 특정 퇴직자 라인이 엮여 있다는 말을 수없이 들었다”며 “이제는 제품 품질보다 인맥이 경쟁력이라는 씁쓸한 말이 현실이 됐다”고 말했다.

 

실제로 인사혁신처 통계에 따르면 2024년 기준 중앙행정기관 퇴직 공무원의 민간 재취업 심사 건수는 1만 2천 건을 넘었으며, 이 가운데 22%가량이 조달·계약 관련 업무를 담당하던 인사들이었다.

 

특히 자본금 5억 미만, 매출 10억 미만의 소규모 조달업체는 현행 취업제한 규정의 적용 대상에서 벗어나 있어, 퇴직 공직자들이 ‘관계망’을 이용해 영향력을 행사하기 쉬운 구조라는 점이 문제로 꼽힌다.

 

경기도의 한 공공기관 퇴직 간부는 “공직을 떠난 뒤에도 지역 공무원 사회의 네트워크는 그대로 유지된다. 서로 선·후배로 이어져 있기 때문에 부탁 한마디면 문이 열린다”고 털어놓았다.

 

실제로 조달청 산하 협회나 연구원으로 옮긴 전직 관료들이 자문 형식으로 특정 업체의 낙찰을 돕는 경우가 적지 않다는 내부 관계자의 증언도 이어졌다. 이러한 구조적 병폐는 단순히 한두 명의 일탈이 아니라, 제도적 허점에서 비롯된 구조적 특권이라는 점에서 더 심각하다.

 

현행 공직자윤리법은 퇴직 후 3년 동안 ‘퇴직 전 5년 이내 소속 부서의 업무와 밀접한 관련이 있는’ 기관 취업을 제한하고 있지만, 그 범위가 협소해 실질적 제재는 어렵다. 더욱이 지자체 단위에서는 수의계약이 허용되는 예산 규모가 작아 감독의 손길이 닿지 않는 경우가 많다.

 

이 틈새를 노려 전관 네트워크가 자리잡으면, 사실상 ‘조용한 독점’이 가능해진다. 한 지방 감사 관계자는 “서류상으로는 절차가 완벽해도, 인맥이 개입된 정황은 문서로 남지 않는다”며 “결국 감사로 잡아내기 어려운 회색지대가 존재한다”고 말했다. 업계의 피해는 구체적이다.

 

중소업체들은 매년 조달입찰에서 고배를 마시고, 기술혁신에 투자할 의지를 잃는다. 낙찰을 따내는 쪽은 늘 비슷한 얼굴들이고, 사업 품질이나 지역 경쟁력은 뒷전으로 밀린다.

 

한 중견 제조업체 대표는 “새 기술을 개발해도 납품처를 뚫지 못한다. 기술이 아니라 사람으로 연결된 문이 더 크기 때문”이라며 “이런 상황에서는 누가 혁신을 하겠느냐”고 반문했다.

 

감사원은 2024년 한 해에만 지자체 조달계약과 관련된 비위 건수를 312건 적발했다고 밝힌 바 있다. 이 중 상당수가 내부 직원과 외부 업체 간 유착 또는 사적 친분에 의한 입찰 불공정이었다.

 

하지만 적발 이후 실제 형사처벌로 이어진 건수는 10%에 그쳤다. 솜방망이 처벌이 관행을 방조하는 셈이다. 전문가들은 지방 조달 시장의 투명성을 높이기 위해 △모든 수의계약 내역 공개 △퇴직 공직자 재취업 현황 실명제 △지자체별 외부 감사 확대를 촉구한다. 한 공공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전관예우의 근절은 윤리 의식만으로 해결되지 않는다.

 

정보공개와 참여 감시가 병행돼야 한다”며 “조달 시장을 열어젖히는 순간, 전관예우는 설 자리를 잃게 된다”고 강조했다.

 

결국 전관예우는 단순한 특혜의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예산의 흐름을 왜곡하고, 공공의 신뢰를 무너뜨리며, 지역 경제의 공정 경쟁을 질식시키는 오래된 악습이다.

 

퇴직 공직자의 명예로운 삶이 결국 또 다른 특권의 출발점이 된다면, 공직의 윤리와 국민의 신뢰는 더 이상 회복될 수 없다. 지금 필요한 것은 미봉책이 아닌 근본적 개혁이다. 투명한 제도와 실질적 제재, 그리고 공직자 스스로의 윤리적 각성이 함께할 때만, 이 고질적인 악순환의 고리를 끊어낼 수 있을 것이다.

 

한방통신사 양호선기자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