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재명 대통령이 반도체 산업 육성을 위한 업계 간담회에서 언급한 ‘송전거리 비례요금제’를 두고 수도권 제조업계를 중심으로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지만, 강원·호남 등 전력 생산 지역에서는 “뒤늦었지만 반드시 가야 할 방향”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수십 년간 지방이 감내해 온 발전 시설 부담과 환경 비용을 외면한 채, 수도권이 상대적으로 저렴한 전기를 사용해 온 구조 자체가 더 이상 지속 가능하지 않다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기 때문이다.
강원과 호남은 석탄화력, 원전, 풍력, 태양광 등 국가 전력 생산의 핵심 거점이다. 그러나 발전소가 들어선 지역은 환경 훼손과 주민 갈등, 각종 규제를 떠안아 왔고, 정작 생산된 전력은 대규모 송전망을 통해 수도권으로 보내졌다. 그 과정에서 발생한 송전 비용과 사회적 갈등은 ‘국가 전체를 위한 희생’이라는 명분 아래 지역 몫으로 남아 왔다.
이 대통령이 제시한 송전거리 비례요금제는 이러한 구조를 바꾸기 위한 정책적 시도다. 전력 생산지 인근에서는 요금을 낮추고, 장거리 송전이 필요한 지역에는 그 비용을 요금에 반영하겠다는 것이다. 이는 단순한 요금 조정이 아니라, ‘지산지소(지역에서 생산하고 지역에서 소비)’라는 원칙을 산업 정책 전반에 적용하겠다는 선언에 가깝다.
특히 강원과 호남 지역에서는 이 정책이 새로운 산업 기회를 열 수 있다는 기대가 나온다. 반도체, 데이터센터, 이차전지 등 전력 다소비 산업이 수도권에 집중된 이유 중 하나는 값싼 전기와 인프라였다. 그러나 전력 요금 구조가 합리적으로 조정된다면, 재생에너지와 발전 인프라가 풍부한 지역이 오히려 경쟁력을 갖게 된다. 이는 단순한 공장 이전이 아니라, 지역에 산업 생태계와 일자리를 함께 만드는 구조적 전환으로 이어질 수 있다.
수도권 제조업계는 송전거리 비례요금제 시행 시 연간 약 1조4000억 원의 추가 전기요금 부담을 우려하고 있다. 그러나 지역에서는 “그동안 그 비용을 누가 부담해 왔는지 돌아봐야 한다”는 반론이 제기된다. 장거리 송전선로 건설 과정에서 발생한 주민 반대, 경관 훼손, 안전 문제는 대부분 비수도권 지역의 몫이었고, 전력 소비의 혜택은 수도권에 집중돼 왔다는 것이다.
전력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장거리 송전에 의존한 수도권 중심 전력 소비 구조는 한계에 봉착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송전망 확충은 갈수록 사회적 비용이 커지고 있고, 기후위기 대응과 에너지 전환을 위해서도 생산과 소비의 물리적 거리를 줄이는 것이 필수적이라는 분석이다. 강원과 호남이 재생에너지 중심의 산업 거점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국가 차원의 전략적 투자가 병행돼야 한다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결국 이번 논란은 ‘전기요금 인상’이라는 단편적 문제를 넘어, 국가 산업 구조와 지역 균형 발전을 어떻게 재편할 것인가에 대한 질문으로 이어진다. 지방에서 생산한 전력을 서울과 수도권이 값싸게 사용하는 기존 방식은 더 이상 정당화되기 어렵다.
전력 생산 지역이 합당한 혜택을 누리고, 산업과 일자리가 함께 자리 잡는 구조로의 전환이야말로 지속 가능한 성장의 출발점이라는 점에서, 송전거리 비례요금제는 피할 수 없는 시대적 과제로 떠오르고 있다.
한방통신사 양호선기자 기자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