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타(예비타당성)를 통과한 순간부터 ‘성공’이 보장되는 사업은 없다. 인구 1만도 안 되는 강원특별자치도 삼척시 도계읍에 초고가 의료 인프라인 중입자 가속기 암치료센터를 세우겠다는 계획은, “탄광에서 치료로”라는 서사만으론 굴러가지 않는다. 의료는 상징이 아니라 운영이고, 운영은 결국 숫자다.
1) 작은 내수, 큰 설비 — 시장의 진실
도계의 거주 수요로는 가동률을 받쳐줄 수 없다. 성공 방정식의 1항은 외부 환자 유치다. 수도권·영남권 상급병원과의 전원(transfer) 네트워크를 법적 MOU로 묶고, 초기 3년간 **외부 환자 비중 60~70%**를 KPI로 못 박아야 한다. “지역 주민을 위해 짓는다”는 문장은 아름답지만, 비용을 감당하는 데 필요한 환자 규모를 대신해주지 않는다.
2) 접근성보다 먼저, 가격의 장벽
중입자 치료는 아직 비급여 중심이다. 급여·선별급여 로드맵—대상 암종, 적용 시점, 본인부담률—없이 “접근성 개선”을 말하면 공허하다. 환자는 ‘집에서의 거리’보다 ‘지갑에서의 거리’에 먼저 막힌다. 급여화 일정이 불명확하면 외부 환자 유입도, 장기 체류 수요도 설계가 불가능하다.
3) 기차와 국도뿐인 교통, 없는 건 성공 전략이 아니다
도계 접근은 사실상 국도·무궁화호에 의존한다. 그 현실을 바꿀 수 없다면, 바꿔야 할 것은 서비스다. KTX·시외버스 거점(강릉·동해)과 센터를 잇는 상시 셔틀+의료 코디네이터, 야간 응급 전원 루트, 도계역 시간표 연동 픽업을 ‘운영비에 포함’해 제도화하라. 체류형 치료 특성상 간병 동반형 **메디컬 로지(100실+)**와 보호자 하우징도 민간투자(PPP)로 선(先)확보해야 한다. 교통·숙박·간병을 패키지 요금으로 묶는 순간, 불리한 지리가 “예측 가능한 여정”으로 바뀐다.
4) 장비는 돈으로 사지만, 품질은 사람으로 산다
방사선종양 전문의, 의료물리사, 가속기 엔지니어 없이는 ‘빔’이 아니라 ‘그림’만 남는다. 주거·자녀교육·연구비를 포함한 정착 인센티브, 강원권 대학·연구소와의 공동 채용·연구 트랙, 24/7 QA(품질보증) 체계를 계약서로 고정해야 한다. 인력 충원이 늦어지면 가동률 저하는 구조화되고, 적자는 상수화된다.
5) 보이지 않는 비용과 보이는 장치
전력·정비·QA·소모품·보험·감가상각—이 모든 운영비 10년 시뮬레이션을 시민에게 공개하라. 동시에 **게이트(단계평가)**를 걸자. ▲외부 환자 비중 ▲가동률 ▲평균 대기일 ▲안전지표 ▲영업손익 5개를 분기별로 공개하고, 4분기 연속 미달 시 확장 중단·구조조정·민간위탁·철수 옵션을 자동 발동하도록 조례·협약에 못 박아야 한다. 상징을 지키려 재정을 소진하는 악순환을 끊는 최소한의 안전핀이다.
6) 단계 개소, 그리고 ‘숫자 공개’가 신뢰다
고정형→회전형 순으로 단계 개소해 가동률·품질의 안정성을 먼저 확인하라. 멋진 조감도 대신, 월별 KPI 대시보드—환자유입, 취소율, 체류일수, 전원시간, 불만·사고율—를 공개하는 것이 지역과 투자자의 신뢰를 만든다.
“서사의 도시”가 될 것인가, “숫자의 도시”가 될 것인가
도계의 전환 서사는 충분히 매혹적이다. 그러나 의료산업은 낭만이 아니라 가격×수요×가동률의 곱으로 성패가 갈린다. 외부 환자 유치, 급여화 로드맵, 교통·숙박 패키지, 인력 파이프라인, 운영비 투명성—이 다섯 장의 실행 문서가 먼저 나와야 한다. 그 문서가 보이지 않는다면, 예타 통과의 박수는 오래가지 못할 것이다. 숫자가 말하게 하라. 그래야 상징이 자산이 된다.
한방통신사 양호선기자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