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전력산업은 공공성과 기술 의존성이 동시에 높은 특수한 구조를 가지고 있다.
발주처는 한국전력공사(한전)로 단일화되어 있고, 납품업체는 효성·LS·현대·일진 등 소수의 대기업이 시장을 과점하고 있다.
이 구조는 ‘안정적인 공급체계’라는 장점을 지니지만, 그 이면에는 ‘고착된 납품 질서’라는 취약성이 자리한다.
■ 한전 중심의 단일 발주 구조가 만든 ‘비경쟁 시장’
한전은 국가 전력망 구축과 유지보수를 담당하는 독점 공기업이다.
발전 자회사와 송·배전 설비까지 포함해 전체 전력 인프라 발주 물량의 80% 이상을 좌우한다.
따라서 한전의 입찰 시장에서 ‘한 번 낙찰된 기업’은 수년간 안정적인 매출을 보장받는 반면, 신규 진입 기업은 기술 인증과 거래 이력의 벽을 넘지 못해 발을 들이기조차 어렵다.
결국 시장의 문이 좁아지고 경쟁이 형식화된다.
입찰서류는 형식적으로 경쟁하지만, 실제 낙찰 가능성은 사전에 조율된다는 구조적 유혹이 존재한다.
전력 기자재 산업의 담합은 한두 기업의 일탈이 아니라 폐쇄적 조달 구조가 낳은 필연적 결과라는 분석이 힘을 얻는 이유다.
■ 기술 독점이 공정경쟁을 잠식하다
전력기기, 특히 **가스절연개폐장치(GIS)**나 해저케이블, 초고압 변압기 같은 핵심 설비는 고도의 기술력과 안정성 인증이 필요하다.
이 인증 절차는 당연히 중요하지만, 실제로는 진입장벽이 되어 ‘기존 업체 보호막’ 역할을 해왔다.
신규 업체는 한전 인증 절차만 통과하는 데도 수년이 걸리고, 설비·시험 인프라 투자비만 수백억 원에 달한다.
결국 인증을 보유한 소수 기업이 낙찰을 ‘돌려가며’ 따내는 구도가 형성된다.
이런 구조에서는 기술 혁신보다 ‘관계 유지’가 경쟁력으로 변질된다.
■ 내부 인력 순환 구조와 유착 가능성
한전과 전력기기 제조업계는 인력 교류가 빈번하다.
퇴직한 한전 기술직 직원이 납품업체의 고문이나 자문역으로 재취업하는 일이 흔하고, 이를 업계에서는 ‘전문성 활용’이라 부른다.
그러나 이는 동시에 정보 비대칭과 유착 가능성을 키운다.
입찰 조건과 규격이 사실상 특정 업체를 위한 맞춤형으로 설계되는 구조가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이런 관행은 “법적으로 문제없다”는 인식 속에서 오랫동안 유지돼 왔다.
■ 전력요금 체계와 소비자 피해
한전이 조달비용을 증가시키면, 그 부담은 결국 전기요금으로 전가된다.
경쟁이 없는 구조에서 낙찰가는 하락하지 않고, 공급망의 담합이 전력요금의 간접적 상승 요인이 된다.
국민은 전력기기 한 대의 낙찰가가 오를 때마다 ‘보이지 않는 세금’을 내고 있는 셈이다.
한전의 재무구조 악화, 전기요금 인상 논란은 이런 구조적 문제의 ‘끝단’에서 드러난 결과다.
■ 개혁의 해법은 ‘투명한 조달’과 ‘공공 감시’
전문가들은 공공조달 시장의 개혁 없이는 동일한 사건이 반복될 것이라고 입을 모은다.
한전이 기술인증·입찰·검수의 모든 권한을 쥔 구조에서 벗어나, 조달청·공정위·감사원 등 외부 기관이 분리 감시하는 다층 구조가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또한 기술 인증 절차를 투명화하고, 중소기업의 시험장비 공동활용 시스템을 도입해 ‘기술 기반의 경쟁’으로 회귀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크다.
한 공정경제 연구자는 이렇게 말했다.
“전력산업은 기술보다 신뢰가 더 중요한 산업이다.
납품업체와 발주기관이 ‘공생’이 아니라 ‘공모’로 움직인다면, 그 비용은 국민이 떠안는다.”
■ 맺음말 ― ‘빛’을 전하는 산업, 그 빛을 잃지 않으려면
전선과 전력기기는 빛과 에너지를 전달하는 도구다.
그러나 그 산업이 투명성을 잃는 순간, 전력은 국민에게 닿기도 전에 어둠을 낳는다.
한전과 전선업계가 진정한 공공성을 회복하기 위해서는 공정한 시장 질서 위에서 빛을 켜는 구조적 전환이 필요하다.
담합의 불빛이 아니라, 투명의 빛이 국민의 삶을 비춰야 할 때다.
한방통신사 양호선기자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