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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산업

삼척 도계 중입자 가속기 암치료센터 예타 통과…‘성공 방정식’은 아직 비어 있다

강원특별자치도 삼척시 도계읍에 들어설 ‘중입자 가속기 기반 암치료·의료산업 클러스터’ 조성이 8월 20일 정부 예비타당성조사(예타)를 통과했다. 총사업비는 약 3,603억 원으로 알려졌으며, 부지 약 12만㎡에 중입자 암치료센터와 80병상 규모의 케어센터, 연구·교육시설, 레지던스 등이 포함된 대형 프로젝트다. 대상지는 대한석탄공사 도계광업소 일원으로, 폐광지역의 산업 전환을 표방한 상징적 사업이라는 점에서 지역 기대감이 크다.

 

그러나 예타 통과가 곧 ‘성공’의 보증수표는 아니다. 초고가 장비와 고난도 운영이 동반되는 입자치료 인프라의 특성상, 수요·비용·운영·인력·재정 위험을 세밀하게 따져보지 않으면 대규모 투자가 지역 상징물로만 남을 수 있다는 경고등이 동시에 켜졌다.

 

전국 공급, 정말 더 필요한가…중복 논란의 핵심은 ‘용량’

 

중입자 치료는 이미 국내 가동이 시작됐고, 부산 기장 등 타 권역에서도 가동·도입이 예고돼 있다. 여기에 삼척 도계까지 더해지면 수도권·영남권·동해권으로 거점이 다변화되는 셈이다. 문제는 중입자 치료센터 한 곳이 연간 처리할 수 있는 환자 수(용량)가 그리 크지 않다는 점이다.

 

암종·적응증이 제한적이고 치료 과정이 길어 전국 다점(多點) 설치가 실제 수요 대비 과잉이 될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전국에 몇 개가 적정한가’라는 질문 없이 지역균형 논리만으로 확장하면, 시설 간 환자 분산과 과당 경쟁으로 운영 효율이 급격히 떨어질 수 있다.

 

접근성보다 먼저 가로막는 건 ‘비용 장벽’

 

지역 주민들의 접근성을 높이겠다는 명분이 설득력을 갖추려면, 치료비 문제에 대한 답이 먼저 제시돼야 한다. 현재 국내 중입자 치료는 건강보험 급여가 본격화되지 않아 환자 본인부담이 수천만 원대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상태가 지속된다면 ‘집 근처에 센터가 있다’는 사실이 곧바로 치료 선택으로 이어지기 어렵다.

 

정부와 지자체가 진정한 접근성 개선을 이야기하려면, 어떤 암종을 언제부터 어떤 방식으로 급여·선별급여에 편입할지, 단계적 로드맵을 공개해야 한다. 급여화의 범위와 속도가 사업의 실질적 성패를 좌우한다.

 

‘보이지 않는 비용’—전력·유지관리·품질보증

 

입자치료 시스템은 대규모 전력 소비와 정교한 품질보증(QA)을 전제로 한다. 가속기·빔라인·쉴딩(차폐)·온습도·진동 제어 등 설비 운용은 24시간 관리가 요구되며, 전력비·정비비·소모품비와 함께 핵심 인력의 상시 당직 체계도 필수다.

 

예타 이후 물가 상승·설계 변경·부대공사로 총사업비가 증액되는 전례를 고려하면, 준공 이후 10년간의 운영비 추계를 시민에게 투명하게 공개하고, 에너지 효율화·운영 최적화 계획을 구체적으로 제시해야 한다.

 

지역경제 vs 지역의료…목표를 이중으로 관리해야

 

도계 프로젝트는 ‘폐광 대체산업’과 ‘첨단 의료’라는 두 마리 토끼를 동시에 노린다. 하지만 지역경제적 지표(방문객·고용·정주 인구)와 지역의료 지표(생존율·치료 접근성·의료격차 완화)가 자동으로 일치하는 것은 아니다.

 

방사선종양학 전문의, 의료물리사, 엔지니어, 가속기 운영 인력 등 고숙련 인력의 안정적 수급과 품질관리 체계 없이는 의료적 성과를 담보할 수 없다. ‘관광과 산업 유치’의 언어로만 포장된 의료 거점은 위험하다. 사업의 1순위 목표가 환자 치료 성과인지, 지역경제 파급인지, 두 축의 성과를 어떻게 병행지표로 관리할지를 명료히 해야 한다.

 

지방비 1,700억대…재정 리스크는 누가 떠안나

 

총사업비의 절반가량이 지방비로 추산되는 가운데, 장기 운영에서 적자가 발생할 경우 재정 보전은 누구의 책임인지, 보전 상한과 조건은 무엇인지가 쟁점으로 떠오른다. 공사비·장비비 상한선, 설계변경 기준, 단계별 집행과 성과 평가, 운영 흑·적자 공유 메커니즘을 사전 합의해 조례·협약에 못 박아야 한다. ‘일단 짓고 보자’는 방식으로는 시민의 부담을 예측 가능하게 만들 수 없다.

 

정책 과제—숫자와 로드맵으로 증명하라

 

첫째, 급여·선별급여 로드맵을 제시해야 한다. 대상 암종, 적용 연도, 본인부담률을 단계별로 공개해 ‘접근성 향상’의 실체를 확보해야 한다.
둘째, 전국 단위 수요·용량 공동계획이 필요하다. 기존·계획 센터와 환자 전원 체계, 권역별 역할 분담을 도식화해 과잉과 공백을 동시에 방지해야 한다.
셋째, 10년 운영비 시뮬레이션을 시민에게 투명하게 공개하라. 전력비·정비비·QA·인력비·소모품까지 포함한 추정치를 매년 업데이트해 재정 위험을 관리해야 한다.
넷째, 지역 필수의료와의 정합성을 확보하라. 분만·응급·중환자·재활 등 도계권역 필수의료 지표와 연동된 ‘지역 건강지표 개선 목표’를 병행 지표로 설정해야 한다.
다섯째, 형평성 장치를 마련하라. 비급여 상태가 이어질 가능성에 대비해 저소득·원거리 환자 대상 교통·숙박·간병 바우처와 지역주민 우선 상담·예약 창구를 제도화할 필요가 있다.

 

‘탄광에서 치료로’라는 전환의 서사는 분명 힘이 있다. 그러나 의료는 상징으로 운영되지 않는다. 도계 중입자 가속기 클러스터가 진정한 지역 자산이 되려면, 예타 통과의 박수 뒤에 급여화 일정·운영비·인력·용량관리라는 차가운 숫자들이 따라붙어야 한다. 지금 필요한 것은 장밋빛 조감도가 아니라, 시민의 세금과 환자의 부담을 지켜낼 구체적 로드맵이다.

 

한방통신사 양호선기자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