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유철 기자수첩]삶의 터전 앗아간 산불…청송의 눈물, 그리고 희망

  • 등록 2025.04.08 21:57: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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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강풍이 삼킨 마을…청송 주민들, 삶의 터전 잃다
"전국이 울고 도운 청송의 비극…남은 것은 희망뿐"

산불의 화마(火魔)는 경북 청송 주민들의 삶을 송두리째 앗아갔다. 화염이 지나간 산간마을은 마치 전쟁터를 방불케 하는 처참한 모습이었다. 초속 20미터에 달하는 강풍은 수북이 쌓인 낙엽을 불쏘시개 삼아 산과 마을을 순식간에 집어삼켰다. 그 불길은 소중한 생명과 재산까지도 앗아갔다.

 

지난 25일 발생한 산불로 청송군 일대는 9,320헥타르의 산림이 소실됐고, 주택 770동, 농가 1,346호, 축산 시설 및 공공 인프라에도 큰 피해가 발생했다. 이 과정에서 4명이 사망하고 1명이 중상을 입는 등 안타까운 인명피해도 이어졌다.

 

현장을 찾은 기자의 눈에 비친 마을의 모습은 한마디로 참혹했다. 폭삭 내려앉은 지붕, 새까맣게 그을린 가재도구, 불에 탄 농기구와 소중한 삶의 흔적들은 말 그대로 잿더미가 됐다. 전답과 산을 멍하니 바라보는 주민들의 표정에서는 실의와 절망이 고스란히 묻어났다.

 

화재 당시, 거동이 불편한 고령자들은 불길을 피하지 못해 목숨을 잃었고, 바람을 타고 날아든 불티는 달리는 차량에도 옮겨붙는 등 상황은 더욱 악화됐다. 급히 피신했던 주민들이 마을로 돌아왔을 때, 그들 앞에 남아 있는 것은 그저 검은 잔해뿐이었다. 평생을 일궈온 전답, 애지중지 키운 가축, 농사 준비를 위해 마련해 둔 농기구, 그리고 가족의 추억이 담긴 사진과 서류들까지 모두 사라졌다.

 

진화 작업에 나선 소방본부와 행정당국은 사력을 다했지만, 강풍을 타고 이곳저곳으로 번지는 불길을 막기엔 역부족이었다. 도깨비불처럼 이산 저산을 넘나든 산불은 결국 청송뿐 아니라 영양, 산청, 울주, 의성군까지 확산됐다.

 

청송군은 현재 지역 내 34곳에 임시거처를 마련해 이재민들을 보호하고 있으며, 청송국민체육센터와 진보문화체육센터 등지에 112가구, 약 230여 명의 이재민들이 분리 수용돼 있다. 감염병 확산 방지를 위해 각 시설에는 책임 담당자가 배치돼 모니터링을 실시하고 있다.

 

이런 재난 속에서도 따뜻한 온정은 이어지고 있다. 전북 익산시는 ‘사랑의 밥차’를 청송에 보내 이재민들에게 식사를 제공하고 있으며, 전국 각지에서 달려온 봉사단체들 또한 구호활동에 동참하고 있다. 원불교 봉공회, 음성 꽃동네 봉사단체, 전국 17개 자원봉사단체 등 약 200여 명의 자원봉사자들이 현장에 투입돼 실의에 빠진 이재민들을 돕고 있다.

 

“80평생 농사짓고 착하게 살아왔는데, 이게 무슨 날벼락입니까…”

무너진 집터 앞에서 한 노인이 중얼거린 한마디는 현장을 지켜보던 이들의 가슴을 먹먹하게 만들었다.

 

이번 화재의 아쉬운 점은 대피 과정에서의 혼선으로 피해가 커졌다는 점이다. 산불은 더 이상 예외적인 재난이 아니다. 매년 반복되는 대형산불에 대비하기 위해선 산림청, 소방본부, 경찰청 등 관련 기관 간의 일사불란한 대응 체계, 이른바 컨트롤 타워의 구축이 시급하다.

 

또한 산불 예방을 위해 소방차 진입이 가능한 임도 개설, 방화림 조성을 위한 침엽수와 활엽수의 혼합 식재 등 근본적인 대책 마련도 필요하다는 지적이 이어지고 있다.

 

정부는 이번 피해 지역을 특별재난지역으로 선포하고, 청송군은 긴급 재난 예비비를 투입해 복구 작업을 지원하고 있다.

 

전국에서 모여든 온정의 손길이 이재민들의 일상 회복에 보탬이 되기를 바라며, 하루속히 이들의 삶이 제자리를 찾을 수 있기를 간절히 기도한다.

신유철기자 nbu9898@nat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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